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때는 자유롭지는 않았는데 뭐라고 그럴까요. 우리가 조금 지나고 나서 친구들하고 또 옆에 있는 동생들이나 이런 애들이 굉장히 뭐라 그럴까. 적극적으로 많이 따른 편이었어요. 그런 쪽이 많이 몰래 못 가게 하는 걸 목욕탕에 몰래 옷 갖다 놓고 도망가서 놀다 오고 막 그러니.

거기 있다가 보면 그래도 옷장사들도 오고. 미용실에도 가다 보면 양품점도 있고. 잠옷 같은거. 우리가 외출은 안해도 옷 같은거 입고 싶잖아. 엄청 비싸도. 그 동네 엄청 비싸.

해볼 건 다 해봤어. 제비집도 가보고. 담배도 많이 피고. 나는 술은 못 먹었어. 술은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기 때문에. 아예 먹으면 숨넘어가고. 드링크도 못 마셔. 그 정도야. 알코올 성분 조금 있는 것도 안 돼. 체질적으로. 담배는 완전 많이 피웠어. 끊었어.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자는거. 다리 뻗고, 그러니깐 손님이, 손님 올까봐, 경찰 올까봐, 업주 올까봐, 욕 먹을까 봐 내가 늦잠 자서 또 돈 못 벌까 봐. 이런 거 없이 진짜 딱 하루만이라도 정말 그런 생각 하나도 안 하고. 그러니까 집에 있을 때도 일부러 오빠에게 안 맞으려고 자는 척하고. 그런 것들이 연결 선상에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냥 하루라도 제발 그냥 마음 편하게 잤으면 좋겠다. 아무 걱정안하고. 그거였던 것 같아. 그래서 나온 이유도 진짜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싶어서.

그런데 거기 안에서는 특별히 해소 할 방법이 없었어요. 내 같은 경우에는 해소라고 말하기는 뭐 하고 일단 그냥 애들이 있다 보니까 거기 이제 살아야 된다는 그거 밖에는 솔직히 다른 건 없었어요 내가 자유롭게 풍류를 즐긴다든가  이제 술 배워가지고 먹으러 다녔지.

하숙제였을 때는 아무래도 조금 더 자유로웠죠. 휴일 때 되면은 뭐 예를 들어서 친한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카페 같은 데도 가고 뭐 송도를 간다든지. 해운대를 가고 뭐 . 해운대로 피서 가고 그랬어요. 수영복 안에 입고. 옷 입고.

예를 들어서 손님이 없으면 손님을 못 받아서 한잔, 날씨가 궂으면 또 한잔. 술을 엄청 많이 마셨던 거 같아요. (중략) 술을 좋아하니까. 스트레스 쌓이고 그러고 하면. 그냥 제 수중에 돈이 있으면. 언니나 동생들하고 술을 마시다가도. 같이 술을 마셔도 왠지 모르게 풀지 못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가는거야. 딱히 하는것도 없는데 가서 술 마시고 그랬어요.

언니들이 생리할 때 생리할 때도 일을 한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저는 그게 진짜 그때 당시에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저한테는. 엄청 가슴 아프고 기억에 남거든요. 어떻게 생리할 때 일을 하지 상식적으로도 상상이 안됐죠. 황당하고 말이 안 되잖아요. 질 안에 솜 넣고 얼음찜질 시키고. 냉수마찰 시키고 그런 걸 하거든요 업주들이. 그러니까 나까이가 시키는 거죠. 생리하면 일주일이잖아. 거의 일주일동안 일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막대한 자기들한테 손해가 됩니까. 그러면 언니들을 해야죠. 돈 벌어줘야 되니까. 아니 일 안하면 하루에 벌금 엄청나거든요. 하루 못하면 다 자기 빚으로 쌓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언니들 빚이 또 되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20대 초반에 갔을 때는 한 달에 한 4번 놀기도 힘들었거든요. 생리할 때도 막 솜 끼고 하고 이러고 일을 했는데, 30대 초반에 갔을 때는 거기가 많이 변했더라고요. 쉬는 것도 내가 자유롭게, 생리한다고 하면 쉬게 해주고.

진짜 힘들었던 게 생리 중에 여기는 체크라는 자체가 없는 거예요. 나는 생리 기간도 길고 생리혈도 많은데 이게 너무 그래. 안에 있는 여성들끼리 사실은 생리 중에 이렇게  솜을 막고 관계를 하는데 관계를 하다가 보면 이게 솜이 안으로 쑥 밀려 들어갈 때가 있어. 그러면 그거를 같이 있는 애들끼리 이제 올라가 가지고 그걸 빼주고 이렇게 한단 말이야. 나는 거기에 진짜 충격을 받아가지고 처음에. (중략) 나도 다리 벌리고 누워 있는다고 생각을 하니까 이게 너무. 그게 진짜 충격 아닌 충격으로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니까 트라우마로 딱 오는 거예요. 그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일상인 거야.

불안한건 항상 불안했어요. 빚 때문에 빚을 못 갚고 더 힘든 곳으로 가야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만의 공간이 있어도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거예요. 여기서 빠져 나가고 싶다.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다. 몸도 그렇고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으니까. 마음도 몸도 지치니까 그냥 빨리 나가고 싶다. 저는 신경정신과 약 처방 받았어요. 잠을 못자니까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어요.  약은 수면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있으니까. 복용한지는 7년 됬어요.

그래도 잘못. 아무리 타의에 의해서 이끌려서... 그러니까 고소공포증이 폐쇄 그런 게 있는 거지. 왜냐하면 완전히 처녀성을 갖다가 강제적으로. 그러니까는  강간이나 마찬가지니까는. 강간 당한 거지. 그러니까는 이 여기 들어 있는 자체를. 아직도 이 나이가 먹었는데 할머니잖아. 지금 내 나이가 60인데. 근데도 무서운 거라 바깥에는 안 무서운데 이게 방 안에만 딱 있으면 무서운 거야. 불안하고. (중략) 이 길거리를 다니는 거는 괜찮은데. 방 안에 딱 혼자 이제. 사람이 있으면 괜찮아. 강아지도 있고.. 나 혼자 있으면 무서운 거라. 누가 꼭 들어올 것 같고.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나 그런 두려움이 생기는 구나. 아직도. (중략) 모르겠어. 그래서 그런지 어째서 그런지 아직까지 또 바깥에서는 돌아다니는 건 괜찮은데 아직까지도 이게 뭐야. 할머니가 돼가지고 누가 내를 범한다고. 근데 요즘에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 사람이 지 밤길에 만약에 길을 간다하면은 사람을 안 마주쳤으면, 여자는 괜찮은데 남자 같은 경우는 안 마주쳤으면 좋겠어 응. 밤중에 한 9시나 더구나 저쪽에는 으슥하거든 참 무섭거든. 그때 되면 9시 넘으면 캄캄하잖아. 그때는 길거리에 다니면 사람들을 안 마주쳤으면 좋겠어.

아는 동생이랑 언니도 만나고, 주위에 마음으로 많이 신세졌죠. 죽기 싫으니까.. 죽을려고 했다가도 억울하니까 도와달라고 하고. 우울증이 심할때는 자살 충동을 받아요. 그러니까 아는 언니한테 몇 달씩 같이 있자고 해서 그렇게 보냈어요. 3년동안.

배달음식을 시키면 와리가 붙어요. 와리라는 게 거의 10%인가 그게 집집마다 틀리다든데 10%인가 20%인가 이게 누가 먹냐 그걸 현관에서 먹어요. 통과시켜주니까. 통행료라 하면 되겠나 그라믄. (웃음) 그래서 거의 시켜먹으란 소리가 많고. 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나가지를 못하니까 시켜먹고 또 아무튼 간에 나가서 먹는 거는 (업주들이) 별로 안 좋아라해요.

지금은 우리가 배달 어플도 있고 배달이 일상화가 됐지만 완월동이야 말로. 그 당시 정말 배달로 살았는데. 주변의 식당들은 다 100% 배달해서 거의 24시간 배달하고 가격대가 비싼데 다. 어쨌든 월로 끊어서 먹고 밥값만 한 달에 엄청나게 내지 언니들이.

하루에 밥을 두 끼 주는데 아침9시 저녁 5시에 밥을 줬어요. 하지만 아침에는 못 일어났어요. 배타는 사람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못 마시는 술을 계속 먹었기 때문에 그 상태로 못 일어나면 부엌문을 잠궈버려요 배가 고픈데. 김밥아줌마가 돌아다녀도 김밥 한 줄 사먹을 돈이 없어요, 저녁 다섯 시에 밥을 줄 때도 하루에 한 끼 먹는데 조금 먹고 빨리 먹고 나가서 준비하라고 해요. 그래서 거기서 나올 때는 위궤양수술을 받게 됐잖아요, 완월동에서 생활하는 거는 아가씨들이 원해서 물론 생활하는 것도 있지만, 마약 같은걸 삼촌을 통해서 아가씨들한테 전달 한다는 거. 마약 같은거에 취하면 뒤에는 나중에 내 돈으로 사야된다는거,

첫 번째 집에 일할 때 너무 미움을 타가지고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 밥도 안 주고 이러니까 그 집에서도. 근데 다른 방이 이제 그 손님이 이제 그 방에 있는 아가씨가 먹을려고 시켜놓는데 이게 남아 있는 거야 그거 먹고. 그냥 밖에 이제 방 (밖에 내놨길래.) 너무 배고 파가지고. 근데 나는 먹을 게 없잖아. 밥도 없고 쌀도 없고. 그러니까 그 때도 돈도 없고. (...) 배고파서 보면 보면은 이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거 보잖아. 식당에서 그러면 이제 나갔다가 한참 있다 있으면 이제 문 열리고 한 소리가 들린단 말이야. 그럼 이제 봐가지고 이제 음식 남아 있으니까 그거 먹고.. 그래서 막 먹다가 걸린 적도 있고. (먹다 걸렸을 때 어떻게 됐어요.) 쪽팔렸어. 진짜 쪽팔렸어 그래서 다 아니까 그 뒤로는 제 살짝 불려가서 불러서 이제 좀 챙겨주는 사람도, 아가씨도 있었고. 완전히 이제 거지 취급하는 아가씨도 있었고.

요즘에는 그렇지만, 예전에는 다 해줬었어요. 밥값을 다 받아야 되니까 웬만하면 다 해줬어요. 해줬는데 자기 입에 안 맞으니까 안 먹는 거고, 시간대가 안 맞아서 안 먹는 거고 그런 건 있죠. 근데 웬만하면 이모들이 음식을 아주 못하지는 않아요. 근데 가끔 보면 어떤 집은 다이어트 약을 탔나, 반찬이 이상할 때는 있어요. 속 쓰림이 오는 것도 있고. 다이어트 약을 넣은 거 같기도 하고.

처음 그 가게에 면접 보고 들어갔을 때 처음에 소금 뿌리고 그 이후로는 안 했어요. 그런 거 없었어. (중략) 그게 부정을 없애는 거라고.. (중략) 입구 들어오기 전에. 뿌리고 그 이후로는 안 그랬어요. (중략) 그게 소금 해가꼬 앞, 뒤로 뿌리고 나서 소금 세 번 찍어 먹는 거.

다 했어요. 나 들어 갈 때. 소금 뿌리고 불 뛰어 넘으라고 한다거나 그 뒤에도 새로운 아가씨가 오면 보고보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앞뒤로 소금 뿌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금 다 뿌리고, 신문지 같은거 다 태우고 뛰어 넘으라고 하고.